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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일찍 병원에 갈 걸

by 카리킨 karrikin 2026. 3. 24.

어제부터 감기증상이 심해지더니, 어느새 기침이 심해지면서 콧물이 멈추지 않고 열이 나서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목요일에 여행을 못 가게 되는 컨디션이 될까봐 서둘러 아침에 엄마와 함께 이비인후과를 갔다. 약을 처방받는동안 의사가 물어보길, '현재 복용 중인 약이 있으신가요?' 하길래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나 외에는 다른 환자가 없었고, 나 또한 내가 환자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그들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반응이었나보다. 연차가 있어보이는 약사가 외국어 설명서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은 꽤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있었으면 서로가 불편했을 상황이니, 다음부터는 처방전이나 약 종류 사진을 보여주세요.' 라고 말이다. 약사는 환자가 먹는 약을 제대로 인지하고 서로 충돌되는 성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한다. 친절하고 따뜻한 한마디에 오늘 하루도 좋은 시작이 될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신경정신과에 통원하기 전,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매우 서툰 사람이었다. 밥을 먹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씻는 것도 모두 거렁뱅이처럼 입고 다니며 피해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진짜고,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전부 가식이라는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고립된 자신의 모습을 애처롭게 여기며 자기연민에 빠져 살았다. 이대로 살다가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 무렵 나보다 먼저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언니의 간곡한 부탁에 상담만이라도 받아보자는 마음으로 집 근처 병원에 갔다. 참고로 모든 병원은 집에서 가까울수록 좋다. 멀면 멀수록 가기도 힘들고 증상이 심할 때에는 단약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의사의 동의없이 환자가 스스로 단약하는 것은 이전 증상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나도 병원에 가지 못해 뜻하지 않게 단약을 하게 되면서 더 긴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혹시나 병원비가 걱정된다면 각 지자체마다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으니 적극 활용해보자. 각 지자체 사이트에 들어가면 정보는 너무나 많다. 그리고 자신이 병원에 갈 상태가 아니지만 권유를 받았다면 한 번쯤은 고민상담을 해본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가보기를 추천한다. 생각보다 우리 스스로는 강하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내 생각이 내 것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느끼거나 아예 못 느낄 수도 있다.

 

병원을 가면 좋은 점은 의사선생님이 다른 관점을 제시해준다는 것이다. 내원 당일 기분을 먼저 물어봐주고, 약을 복용한 기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 말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나의 상태를 알게 된다. 모든 증상에 대해 '그럴 수 있다'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이해받지 못한 설움을 여기서 풀다가 눈물, 콧물 다 쏟아서 젖어버린 손수건이 한 두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공감받지 못한 서러움이 슬픔을 의사선생님은 잠깐의 상담과 약물처방으로 위로해준다. 처음에는 약만 처방해주길래 상담시간이 너무 적어서 의아했다. 그런데 더 깊은 상담을 원한다면 지자체 상담소를 이용하거나, 사설 상담(비용이 10만원 이상부터 시작하기에 꽤 비싸서 나도 많이 가지는 못했다.)을 이용해보자. 한 번 토해내고 난 후 후련한 것처럼,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일부 병원은 환자가 너무 많아서 진료를 급박하게 해야하는 곳이 있다. 처음이어도 괜찮으니 분위기를 한 번 보고 좀 더 사람이 적은 곳을 가기를 추천한다. 사람이 많으면 다음 차례 환자가 있다는 사실에 충분한 진료가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적한 병원을 추천한다.

 

나는 현재 경미한 정도의 양극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우울기간이 길었으나 성인이 되어서 조증 증상이 나타났다. 물건을 너무 많이 사서 빚이 생겼고, 빚을 감당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고작 25살에. 계좌를 사용할 수 없으니 쿠팡에서 일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경제활동이 막히니 돈이 조금이라도 드는 활동이라면 안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우울이 더 심해졌다. 침대에서 하루종일 의미없는 영상들만 보며 잠들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식욕도 없어서 살도 처음으로 아랫자리수를 기록했다. 아직 20대인데 인생이 망한 것 같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었다. 그 기간은 정말 지옥처럼 힘들었지만, 많은 걸 배웠다. 이게 정말 병이구나, 좀 더 치료를 잘 받아야지.

 

이제는 조금 알바를 하며 내가 먹고 살 돈은 벌고 있다.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알바를 가야하니 일어나자마다 약을 먹는다. 약을 먹자마자 바로 베란다로 나가서 햇빛을 받는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무조건 바깥바람에 숨을 한 번 쉬어본다. 그러면 잠들었던 모든 신경이 깨서 왠지모를 기분 좋은 느낌으로 에너지를 올린다. 의사선생님은 항상 햇빛보기를 강조하신다. 그래서 말씀대로 한다. 안 하면 내가 힘드니까. 좀 더 힘들어도 괜찮다면 운동을 권한다. 산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냥 해본다. 예전부터 수영, 요가, 필라테스에 관심이 있었지만 다 할 수 있을만큼 여유롭지 않기에 내킬 때 가끔 해본다. 그냥 하라고 하신 것들은 하고 싶지 않아도 해본다. 그 지점에서 변화가 오는 것을 느꼈다. 변화를 느끼자 행복했다. 모두들 나처럼 조금은 행복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