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눈물을 많이 흘릴 수밖에 없었던 영화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그토록 제 마음을 울렸는지, 아주 힘들게 우울의 터널을 지나왔던 그때에 너무나 큰 힘이 돼 주었던 영화입니다.

말없는 소녀와 빨간 머리 앤의 공통점과 차이점
영화 말없는 소녀와 빨간 머리 앤은 서로 다른 배경과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어린 소녀가 새로운 환경에서 감정적으로 성장하고 회복해 가는 서사를 중심에 둡니다. 두 이야기는 아이가 겪는 상처와 결핍을 조명하고, 그 안에서 주변 인물과 맺는 관계가 어떻게 소녀의 세계를 확장시키며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 세심하게 그려냅니다. 말없는 소녀는 말수를 잃은 아이의 침묵 속에 숨겨진 감정의 결핍과 회복을 이야기하고, 빨간 머리 앤은 특유의 상상력과 감정 표현을 통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두 작품의 감정 흐름을 상실 – 유대 – 변화라는 세 가지 축으로 나누어 비교하고, 어떻게 각 작품이 성장의 단계까지 이뤄가는지 살펴봅니다.
두 소녀가 겪는 상실의 형태
두 작품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통 지점은 바로 ‘상실’입니다. 하지만 이 상실은 두 소녀에게 서로 다른 형태와 무게로 다가옵니다. 말없는 소녀의 코오트는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정서적 돌봄을 제대로 받아 본 적 없으며, 그녀의 침묵은 단순한 말수가 적은 것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적 상처가 매우 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코오트는 가족 내에서 존재감이 미미하며, 감정을 표현할 만한 환경도 부족합니다. 코오트의 상실은 ‘정서적 방치’에 가깝고, 마음속 깊은 곳에 쌓인 감정이 말로 표출되지 못한 채 얼어붙은 상태입니다. 반면 빨간 머리 앤은 어린 시절부터 고아로 살아오면서 물리적·정서적 상실을 동시에 겪습니다. 앤 또한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님을 잃고 고아원과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소속감을 받지 못한 채 생활해 왔습니다. 많은 가정들을 전전해오면서 앤은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보다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하녀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앤은 코오트와는 달리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미래에는 언젠가 자신이 꿈꾸는 집과 가족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한 바람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결코 잃지 않는 명랑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앤의 상상력은 상실과 결핍을 메우기 위한 자구책이며, 자신이 받아야 했던 사랑을 상상 속에서 재구성해 스스로를 지켜 왔음을 보여줍니다. 이 점에서 많은 관객들은 앤에게 연민을 느끼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러한 것이 있는지 자기 돌봄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관계가 만들어내는 유대의 힘
상실 이후 두 소녀가 마주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유대의 시작’입니다. 코오트는 새로운 위탁가정에서 낯선 어른들과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시선을 경험합니다. 이전까지 코오트는 너무나 많은 형제자매들 가운데에서 챙김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새로 태어난 아이와 어린 자녀들을 돌보는 데에 지쳐있고 그러한 상황에서 밥을 먹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 되며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코오트는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코오트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며 더 나아가 가난한 집안을 지탱해 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며 불평합니다. 하지만 위탁가정 부부는 그녀의 침묵을 문제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려하지 않으며 충분한 시간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코오트에게 처음으로 “기다려주는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그 자체가 유대의 출발점이 됩니다. 반면 앤은 정서 표현이 풍부하고 말이 많은 아이로서, 자신의 상상력과 생각을 말로써 끊임없이 표현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앤의 생각을 들어주는 어른들은 없었기에, 앤은 침묵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합니다. 매슈의 첫 만남 때 앤은 본능적으로 자신과의 깊은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매슈를 신뢰하게 되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막힘없이 이야기하면서도 이야기를 듣는 것이 불편하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마릴라는 앤과 함께 평생을 살기로 마음먹은 후에는 앤의 특성을 점차 이해해 가며 그에 맞는 교육을 제공합니다. 매슈의 따뜻함과 마릴라의 바른 도덕성은 앤에게 다층적인 감정적 안정감을 줍니다.
감정이 만들어내는 변화와 성장
유대감 형성 이후 두 소녀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공통점은 감정의 안정과 자기 표현의 변화입니다. 코오트는 감정을 점차 드러내기 시작하며 내면의 문이 열리고, 앤은 감정의 폭을 조절하며 더 성숙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됩니다. 두 소녀 모두 상실에서 출발해 관계를 통해 성장하며 유대감이라는 소속감을 통해 변화를 맞이합니다.
말없는 소녀와 빨간머리 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실을 경험하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유대를 형성하며, 그 유대를 기반으로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두 작품의 감정선은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아이의 내면을 어떻게 변모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코오트는 에이블린의 세심한 돌봄과 션의 따뜻한 보호 아래 점차 말문을 트게 되고, 앤은 매슈와 마릴라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해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