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에서 시작된 나의 기억
일본은 흔히 말하는 ‘잡화의 천국’이라고 불립니다. 처음 일본 여행을 떠났을 때, 제가 가장 설레었던 순간도 바로 그런 잡화점과 빈티지 상점을 마주했을 때였습니다. 쇼와 레트로 감성이 가득한 공간, 시간이 멈춘 듯한 색감, 그리고 이미 누군가의 손을 거쳐온 물건들이 가지는 묘한 온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일본은 보수적인 나라인 만큼 많은 것이 세월에 의해 부식된 듯한 느낌을 주는 나라입니다. 오래된 것들에 대한 대우가 있고, 그러한 정서는 모든 이들이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행 당시 저는 아직 어렸고, 보는 만큼 많이 살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공간을 천천히 걸으며, 물건을 바라보고, 만지고, 상상하는 과정 자체가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때 샀던 연필이나 작은 인형을 보면, 여행 당시의 기쁨과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 그리고 고독이 함께 떠오릅니다. 혼자 떠난 여행이었기에, 저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목적지도 없이 그저 길을 걸어다니기만 했습니다. 발은 아팠지만, 완전히 낯선 곳에서의 삶은 한국에서만 살던 나 자신을 넘어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그런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오래된 잡화점, 사라진 시간, 그리고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살리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판타지 설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영화는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과거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왜 위로는 항상 ‘지금’이 아니라, 한참 뒤에 도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잡화점에 도착한 편지의 의미
이 영화는 32년 전의 편지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의 고민이, 지금의 인물들에게 도착하고, 그 답장이 다시 과거로 전달되는 구조입니다. 이 설정은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현실적인 감정의 구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미래의 자신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합니다. 저 역시 한때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에, 저는 1년 후의 제 자신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때는 그 편지가 정말 도착할 것이라고 믿었다기보다는, 그저 어딘가에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그 편지를 완전히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다시 발견했을 때, 저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안에는 그 당시의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은 제게 중요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왜 우리는 가장 필요한 말을, 가장 힘든 순간에는 스스로에게 해주지 못하는 걸까요. 그리고 왜 그 말은 항상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의미를 갖게 되는 걸까요. 가장 소중한 존재는 나 자신이지만, 오히려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바로 그 질문을 이야기합니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답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편지를 씁니다. 완벽한 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입니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는, 인물들이 해주는 말이 특별히 지혜롭거나 현명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틀린 말도 하고, 모호한 조언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답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의 고민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이 영화가 말하는 기적이라고 봅니다. 정답이 없는 삶 속에서 그나마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따라 답하려고 하는 그 마음이 어찌보면 기특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때는 몰랐던 의미를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합니다. 어떤 말, 어떤 물건, 어떤 장면이 뒤늦게 마음을 울리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기적은 일상적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기적’을 특별한 사건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기적은 매우 일상적인 형태로 등장합니다. 누군가가 편지를 쓰고, 누군가가 그것을 읽고, 그리고 누군가가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일본 여행에서 샀던 작은 잡화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이유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것들은 더 이상 실용적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볼 때마다, 저는 그 시절의 저를 떠올립니다. 외로웠지만 용감했고, 불안했지만 계속 걷고 있었던 제 모습을 말입니다. 그 물건들은 저에게 말을 겁니다. “그때도 버텼으니까, 지금도 괜찮다”고요. 지금도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제가 여행했던 사실, 잡화점에 들러 즐거운 기억이 남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아마 평생이 지나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 역시 그런 방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겁니다. 지금의 당신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든, 그것은 언젠가 다른 의미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에서 모든 답을 빠르게 얻고 싶어하며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답은 언제나 늦게 도착하며, 그 지연 자체가 의미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슬프면서도 따뜻하고, 불완전하지만 희망적입니다. 이 영화는 묻습니다. 만약 과거의 누군가가 당신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당신은 어떤 답을 해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만약 미래의 당신이 지금의 당신에게 말을 건다면, 그 말은 어떤 문장일까요.